[사적지정 20주년 기념 특별전] 신창동유적 - 2천년 전의 타임캡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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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12-21 13:25:30 인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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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시장소: 국립광주박물관 기획전시실
■ 전시내용
국립광주박물관은 신창동유적 사적 지정 20주년을 기념하여 특별전을 개최한다.
사적 제375호인 신창동유적은 초기철기시대 사람들의 생활과 생산 그리고 무덤의 실상을 알려주는 거대한 복합유적으로 우리나라에서 처음 발견된 유적이다. 신창동유적이 최초로 알려진 것은 1963년 옹관묘 조사를 통해서이다. 그 뒤 1992년 국립광주박물관이 저습지유적을 중심으로 발굴조사를 실시하였으며, 이로써 2,000년전 사람들의 생생한 생활모습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신창동 유적에서는 칼·활 등 무기, 괭이·낫 등 농공구, 통형칠기를 비롯한 각종 용기, 발화구·신골·베틀 부속구·현악기·빗 등 다양한 목기와 칠기 유물이 다량 출토되었다. 이러한 유물 대부분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것이거나 최초로 발견된 것들로 국내외의 관심을 끌었다. 이와 함께 출토된 다양한 토기, 골각기, 동식물유체 등은 선사시대 한국문화의 여러 가지 모습을 알려주는 귀중한 자료로 활용되고 있다. 따라서, 1992년 9월 9일 유적의 중요성을 인정받아 사적으로 지정되었으며, 올해 지정 20년을 맞게 되었다.
전시는 크게 4부로 구성하여 신창동 사람들의 삶을 구체적으로 보여주게 된다.
1부는 ‘벼농사 - 내수면의 개척자들’로 신창동유적의 주요 특징의 하나인 영산강변의 고대 농촌의 실상을 보여준다. 대량의 탄화미와 벼껍질 압착층, 다양한 농사도구와 재배 작물 등 동북아시아 최대의 벼생산이 이루어졌던 신창동 마을은 농경에 기반을 둔 고대 사회였다. 또한 다양한 의례용품과 악기 등은 풍요와 안녕을 기원하는 의식을 행하며 가무가 곁들어진 세련된 문화생활을 영위하였던 2,000년 전 농촌 모습을 보여준다.
2부는 ‘신창동 사람들의 생활’이다. 신창동 사람들은 저습지 주변의 구릉 위에 집을 짓고 주변에 논과 밭을 일궈 벼와 밀, 오이 등을 재배하고 때로는 짐승을 사냥하거나 열매를 따고, 물고기와 조개를 잡아 식량을 확보하였다. 식량자원의 생산, 가공, 저장하기 위한 목기나 칠기, 토기를 비롯하여 옷감, 신발, 빗, 삿자리 등 다양한 생활용품을 통해 신창동 사람들의 삶의 모습을 생생하게 엿볼 수 있다.
3부는 ‘교류-강을 지나 바다 건너’로 신창동 사람들의 활발한 교류의 흔적을 보여준다. 이를 통해 신창동 사람들이 영산강을 따라 내륙 및 해안지역과 교류한 흔적을 확인할 수 있다. 당시 사람들은 이외에도 멀리 바다 건너 일본과 낙랑 지역의 사람들과도 활발히 교류하여 더욱 윤택한 생활문화를 가꾸고자 노력하였다.
4부는 ‘신창동- 과거에서 미래로’는 신창동유적에 대한 조사·연구성과와 과제, 유물의 과학적인 보존처리와 관리, 문화유적의 활용 방향 등을 보여줄 것이다. 이를 통해 과거 문화상의 복원뿐 아니라 새로운 가치창조로 이어질 신창동유적의 미래를 전망할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전시는 지난 20년간 누적된 신창동유적의 발굴조사와 연구성과를 종합하여, 2,000년전 신창동 사람들의 구체적인 삶의 모습을 복원하여, 과거문화를 보다 쉽고 구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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